페트병 자동급수 대파 키우기
며칠 전 심은 상추가 너무 더뎌서,
정말 잘 자란다고 하는 대파를 키우기로 했다.
작년에 대파 가격이 폭등했을 때 막연히 집에서 몇 뿌리만 심어볼까 했는데 그때도 여전히
- 집에 햇빛이 들지 않아서
- 화분에 할지 페트병에 할지 스티로폼에 할지
- 어떤 규모로 할지
이런 저런 고민만 하다 흐지부지 끝났다.
그리고 나는 생물을 잘 죽인다. 잘 자라는 것이지만 아마 죽일지도 모른다.
대파 키우기의 장점은 내가 씨앗부터 심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트에서 사 온 "뿌리가 있는 대파"를 8~10cm 잘라주고 심으면 된다.
이걸 귀찮아서 검색도 안 해보고 안 했다니 나도 참. 지독한.
물티슈 자동급수 페트병
(화분이라 하기엔 과분)
6대 4 비율로 잘라준다. 물이 들어갈 쪽이 6. 그래야 얼추 균형이 맞다.
문구용 칼로 뚜껑 가운데 사각형이나 삼각형 모양으로 적당한 크기로 구멍을 내준다. 나는 삼각형 모양으로 냈다.
물티슈를 끼우고 뒤집어서 아랫부분에 끼워주면 화분 쪽은 끝이다.

물티슈를 늘어뜨렸을 때 물통쪽 바닥에 간당간당하게 닿는 쪽이 좋다.
흙을 담기 전에 물부터 담아서 무게를 좀 안정적으로 했다.
다음에는 좀 다른 모양 페트병을 살까. 살짝 틈이 벌어져서 딱 맞지 않고 조금 헛돌아서 불안 불안하다.

마트에서 뿌리가 제일 풍성해 보이는 녀석으로 골랐다.
이 중에 몇 개나 쓰게 될지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아주 풍성하다.
합격.

이럴수가.
파뿌리계의 대머리.
탈락.
그냥 이 친구 빼고 대부분 다 합격컷이었다.
모두 비슷한 길이로 뿌리 부분부터 10cm 가량 잘라주었다.

다이소에서 사온 무농약 배양토.
이때만 해도.. 이 배양토 한 봉지면 페트병 두개는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초보 농부들은 알아두세요. 정말.. 흙이라는건 부피가 아주 가늠하기 어렵다는걸.
생각보다 아주 적은 양이랍니다.
아주 작은 화분인 것 같아도 흙이 보기보다 많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지금 보니 공기 반 흙 반인가?
좋은 토양은 공기를 머금고 있다고는 하는데.
여튼 촉촉하고 좋아 보인다.
이 흙과 선택받은 대파를 썰어서 심어주었다.


겨우 이거 심는데 흙천지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익숙하지 않을 일에 손이 어설퍼서 일까.
학생 때 원예부 활동이나 할 걸 그랬나보다. 도통 식물을 잘 고정할 수가 없었다.
제일 뿌리가 풍성한 녀석들로 골랐는데도.


이상하다.
왜 벌써 자란거 같지??
안쪽 심이 좀 올라와 보이는데.
분명 칼로 평행하게 썰었는데... 대파님?? 저기요?

아 진짜 좀 나왔는데...
그리고 모든 흙을 다 썼다. 저 겨우 하나 만들었거든요.
정말 너무한 무농약 흙... 남겨보려고 애썼는데 무의미해서 마저 다 넣었지만 저 사이즈에 딱 알맞은 양밖에 안됐다.
허망하게 잘려있는 대파뿌리들이 보이는지...
야심차게 준비한 내 남은 페트병들은 또 어쩌고...

어쩌긴 뭘 어째.
흙 더 사오던지 해야지.
당장은 힘들고 또 미루다 보면 언젠가 하는 날이 오겠지.
식물 영양제 사러 가는 날 흙 좀 더 사야겠다.


빨래 건조대 근처가 그나마 제일 햇빛이 잘들어와서 여기로 배치시켜주었다.
힘내서 성장해라..!
다른 식물 친구들은 몰라도 대파 정도는 성공하겠지.
설마 썩겠어?
물만 정기적으로 잘 갈아주면 된다고 한다.
틔운 갈아줄 때 한번씩 같이 갈아주어야겠다.

그래. 잘 자라다오.